모든 삶은 동등하다.
비단 인간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.
주차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치즈 냥이가 있다.
그 녀석은 거진 항상 혼자다.
홀로 골목 골목을 자유롭게 쏘아다닌다.
아주 제멋대로다.
하루의 대부분을 보건지소에 갇혀있는 나는
그런 자유로운 치즈 냥이를 볼 때면
웬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.
그래서 그 녀석을 발견할 때면 이 따금
편의점에서 산 츄르로 유혹해본다.
언제는 잘 먹고 나한테 앵긴다.
언제는 눈 길 한 번 주고
갑자기 뛰더니 사라질 뿐이다.
본성에 충실한 친구다.
먹고 싶으면 먹고,
놀고 싶으면 놀고,
싸우고 싶으면 싸우고,
낮잠 자고 싶으면 잔다.
과연 그 치즈냥이의 삶보다 나의 삶이,
우리 모두의 삶이.
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?
다음 생애는 길거리 파이터
치즈 냥이로 태어나보고 싶다.
그 친구가 경험한 삶을 나도
경험해보고 싶다.
거칠지만 재밌을 것 같다.
하루하루 충만할 것 같다.
벌들의 삶을 봐보자.
참으로 사람의 삶과 형상이 닮아 있다.
벌들은 열심히 꽃을 찾으러 다닌다.
꽃을 스스로 분해해 밀랍을 만든다.
그리곤 열심히 벌집을 만든다.
공학적으로 튼튼한 정육면체들로
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면서 쌓아
한 평생을 벌집을 만드는 데에 바친다.
요즘 사람들은 강남 아파트 한 채 차지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.
서울.. 그 중에서도 강남 아파트는 인간들 사이에서 으뜸으로 쳐준다.
그 강남 아파트가 벌집 같이 보일 때가 종종 있다.
정육각형이 아닌 직사각형인 것 외에
얼마나 다를 게 있나 싶다.
유전자에 각인된 정보의 명령에 따라
강남 아파트 중 한 칸을 보금자리로 차지하기 위해
열심히 노동하고, 고통을 견디고, 삶을 바친다.
그 보금자리에 애벌래를 낳고, 기르고, 주니어를 만든다.
그러한 삶이 하찮거나 열등한 건 절대 아니다.
오히려 우주와 자연의 정교함에 아름다움과 경외감을 느낀다.
모든 인간의 삶은 경이롭다.
모든 벌들의 삶도 경이롭다.
모든 삶은 경이롭다.
그런데 왜 이렇게 (나를 포함해) 사람들은
너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 하려들까.
왜 양쪽에 공기를 올려두고,
평생을 저울질하는 걸까.
그리고 그 비교질에서 오는 고통을
굳이 기꺼이 받아들일까.
왜 다들 에고 게임에
심취에 있는 걸까.
결국 모든 건 한 점에서 만나는데.
출처>
https://youtu.be/e5P-Zrj0rFw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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